해발 1100m ‘비밀의 숲’… 여름도 조용히 비켜간다 |
정선 화절령 트레킹… 신비의 늪지·천상의 꽃밭 찾아가는 길 |
# 운탄도로를 따라 야생화 만발한 화절령을 따라가는 길
그 길을 사람들은 ‘운탄길’이라고 했다. 운탄(運炭)길. 풀어서 보자면 ‘석탄을 운반하던 길’이다.
1960년대쯤 놓인 그 길은 강원도 정선과 태백, 영월 일대의 산악지대에 마치 거미줄처럼 엮어져 있었다.
고개를 넘는 옛길은 사람들이 낮은 목을 찾아 자연스레 넘나다니던 길이지만,
운탄길은 산자락을 깎고 다듬어서 산 중턱을 잇는다.
고개를 넘지 않고 중턱을 깎아내 에둘러서 돌아가는 길이다.
산허리를 깎아 만든 탓에 한쪽은 까마득한 낭떠러지다.
한때 석탄 경기가 좋았던 시절, 탄더미를 가득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 험준한 이 길을
헐떡거리며 지났으리라.
하지만 정선과 태백, 영월 일대의 탄광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 탄광시대가 마감되면서 그 길은 버려졌다. 애초에 석탄 운반을 위해 만든 길이라,
석탄 채굴이 중단되면서 쓸모도 없이 내팽개쳐졌다.
운탄길에 차량 운행이 중단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이제 그 길이 되살아나고 있다. 포클레인의 삽날에 무너진 허리를 도닥이며 스스로 자연의 생태를 복원해가고 있다.
운탄길을 만들면서 심었다던 낙엽송들은 이제 40년을 훌쩍 넘긴 거목이 됐고,
길섶에는 갖가지 야생화들이 마치 씨앗을 뿌려놓은 듯 자라나 꽃을 피워올리고 있다.
운탄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히는 곳이 바로 ‘화절령’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꽃꺾이재’라고 하기도 하고, 발음나는 대로 ‘꽃꺼끼재’라고 쓰기도 했다.
탄광이 들어서기 전, 산골마을의 처녀들이 이 고개를 넘으면서
길가에 만발한 야생화를 꺾었다는 데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했다.
꽃이 만발했다는 그 길을 지도를 짚어 찾아나섰다.
# 한여름에도 선선한 바람 속에서 즐기는 트레킹의 맛 운탄길 중에서 굳이 백운산 자락의 화절령을 찾은 것은 이쪽 길이 함백산과 태백산, 두위봉, 장산 등 해발 1400m를 훌쩍 넘는 산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워낙 고지대인데다 원시림의 숲으로 가득찬 이곳은 한여름에도 아침저녁으로는 한기가 돌 정도로
서늘하다.
삼복 더위로 한껏 달궈진 양철판 같은 도시의 열기에서 빠져나와 피서를 즐기기에는
이곳만한 곳이 없다.
한여름 무더위 속의 도시에서는 만사가 귀찮지만, 바람끝이 서늘한 이곳에 서면, 절로 걷고 싶어진다.
화절령으로 오르는 길을 정선 하이원리조트쪽에서 찾았다. 길 초입은 폐광의 흔적들로 어수선하다.
길옆으로 무너져내린 흙이 탄더미와 섞여 거뭇거뭇하다.
폐허가 돼버린 옛 탄광마을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있다.
화절령 중턱까지는 포장된 시멘트 도로다.
비포장길이 시작되는 입구에 차를 놓아둬도 좋고, 덜컹거리는 비포장길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차로 고갯마루까지 오를 수도 있다.
비포장길로 들어서 잠깐 오르면 옛 운락국민학교 터를 만난다. 탄광이 막 들어선 1967년에 개교했다가, 폐광으로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1991년에 문을 닫은 학교는 교사가 모두 철거돼 자취도 없다.
덩그러니 남아있는 운동장에는 버섯 재배를 위해 가져다놓은 참나무 더미들과 누군가 세워놓은 돌탑만 자리를 지키고 서있다.
풀섶에서 찾아낸 자그마한 기념비 하나만 이곳이 학교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한때 이곳에 학교가 들어설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길을 따라 선선한 바람 속에서 20분쯤 비포장도로를 따라 고갯길을 쉬엄쉬엄 오르면 곧 확 트인 고갯마루의 사거리를 만난다.
이쪽에서 곧바로 가면 영월 상동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길로 가면 영월의 예미까지
이어지는 운탄도로, 왼쪽으로 가면 함백산 자락과 만난다.
# 늪지를 찾아가는 길… 깜짝 놀랄 만한 풍경을 만나다 고갯마루 사거리에서 왼쪽 함백산 자락과 만나는 길로 접어들었다. 그곳에 5년전쯤부터 지하 탄광이 무너지면서 땅이 꺼지고, 습지가 생겨났다고 했다.
습지에는 축구장 크기의 큰 못 하나와 8자 모양의 두개의 작은 못이 만들어졌다.
하이원리조트가 인근에 오프로드 코스를 개발하면서 발견한 곳이다.
큰 못에는 ‘도롱이못’이란 이름을 붙였다.
도롱이란 짚으로 엮은 옛 우비를 말하는 것.
하지만 못의 이름은 ‘도롱뇽’에서 따왔다는데, 그렇다면 이름을 잘못 지은 셈이다.
산길을 짚어 찾아들어가자 쭉 뻗은 낙엽송 숲 사이로 도롱이못이 보였다. 밑동이 썩어 넘어진 나무들은 이끼가 가득 덮인 채 물위에 떠서 삭아가고 있고,
차오른 물속에 뿌리 박은 나무들이 잎을 모두 떨구고 가지를 조형적으로 뻗고 있다.
‘아’ 하는 탄성이 터져나오는 경치였다.
조용한 못 앞에서는 신비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자그마한 물살도 일지 않는 잔잔한 수면은 마치 거울처럼 진초록 숲의 그림자를
또렷하게 반영해내고 있었다.
안개가 밀려올라오는 새벽에 다시 찾았을 때는 더 감동적이었다. 능선을 타고 올라온 안개는 울창한 숲과 거울 같은 물을 서서히 지웠다.
감탄사가 절로 터져나왔다.
우리 땅의 다른 곳에서는 만나본 적 없는 경치. 굳이 비교하자면,
캐나다의 로키산맥에서 만났던 호수의 풍경 같다고나 할까.
크기가 작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인근에 형성된 이름 없는 2개의 못의 경치는 도롱이못만 못했지만, 물가에 하늘말나리, 앵초, 노루오줌, 큰까치수염, 꿀풀 같은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났다.
야생화들은 저마다 화사하게 꽃을 피워내 못 주변은 꽃밭을 연상케 했다.
늪지 부근의 수풀을 들추자, 금방 지나쳤는지 고라니 발자국이 선명하다.
토끼 발자국도 여기저기 찍혀 있다.
# 해발 1100m에 놓인 평탄한 길.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난 폭포 고갯마루 사거리로 다시 돌아가 이번에는 두위봉과 예미쪽으로 향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이쪽 길은 산림청에서 임도로 관리하는 곳.
평소 차량 통행이 이뤄지지만, 수해 예방을 위한 공사 중이어서 이즈음은 통제되고 있다.
이 길은 다른 임도와는 사뭇 다르다.
임도나 옛길은 가파르지만, 이 길은 산허리를 깎아내 만든 길이라 줄곧 평탄하다.
애초에 길을 만든 이유가 산을 넘자는 것이 아니라, 길을 내 석탄을 운반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허리를 깎아내고 줄곧 같은 고도를 유지하고 달리는 길이라 왼쪽은 벼랑이다. 이 때문에 조망이 다른 어떤 길보다 더 탁월하다.
멀리 태백산이며 함백산, 장산의 자락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그 길에서 40~50년은 족히 됐음직한 낡은 GMC 트럭을 만났다.
울창한 숲을 간벌한 나무를 싣고 있는 중이었다.
이 길을 따라 6㎞쯤 가면 길가에 높이 7~8m가 넘는 폭포가 나타난다. 숲 터널 사이로 내려온 물이 바위를 타고 흘러내린다. 숲은 마치 에어컨과도 같다.
폭포와 함께 숲터널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오슬오슬 추위를 느낄 정도로 차다.
정선과 태백이 만나는 사북, 고한 일대는 우리 땅에서 ‘가장 시원한 곳’으로 꼽힌다. 이곳에서는 더위를 쫓아보내려 물에 몸을 담글 필요도 없다.
그저 해발 1330m의 만항재 길을 따라 울창한 숲에 들어 ‘천상화원’을 이룬 야생화를 감상하며
시원한 바람을 즐기거나, 정암사를 들러 맑은 개울속 열목어를 들여다보거나,
두문동재를 넘어 태백시까지 가서 검룡소나 고원휴양림을 찾는 것만으로도
더위는 저만치 달아나고 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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