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늦가을 낙엽 길(속리산 오리 길)

천화대 2007. 11. 14. 18:39

 

속리산 오리숲

 만추의 정취가 가득한 오리숲의 아침 전경.

 속리산(俗離山) 단풍은 수수하다.

설악이나 내장산의 단풍처럼 쌈박, 화려하기 보다는 오색단풍 특유의 은은한 느낌이 더 강하다.

수줍은 시골처녀의 홍조라 비유하면 적절할까.

 

 이즈음 속리산은 '오리(五里)숲'의 단풍과 낙엽이 압권이다.

매표소에서 법주사 입구까지 이어진 오리숲은 숲의 길이가 '5리'에 이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옆으로 수령 100~200년은 족히 됨직한 소나무, 떡갈나무, 참나무가 아름드리 터널을 이루고 있다.

 

실제 길이가 절간까지 5리(2㎞)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찰을 비켜나

세심정으로 향하는 길까지 치자면 운치 있는 숲길이 10리를 훌쩍 넘는다.

 

 예로부터 속리산은 진정 속세와 단절이 가능한 명산으로 꼽혀왔다.

그 초입인 오리숲을 '속리(俗離)', 세상과의 이별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삼았다.

특히 오리숲을 지나며 이따금씩 맞게 되는 '쏴~' 하는 낙엽비에 마음의 찌든 때와

세속의 인연을 씻어내고 산문에 들었다.

 

 속리산 오리숲길 기행은 말티재 부터 시작된다.

말티재는 요즘 굽이 마다 오색 가을빛이 내려 앉아 장관을 이룬다.

특히 이른 아침 자욱한 안개를 뚫고 말티재를 넘는 드라이브는 환상에 가깝다.

고갯길 아래 속리산 들머리에 다다르면 속리산의 얼굴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03호)을 만난다.

 

1464년 세조가 속리산에 들렀을 때 가마가 나뭇가지에 걸리지 않도록 번쩍 들려

벼슬이 내려졌다는 한국의 대표 '얼짱' 소나무다.

하지만 세월 속에 가지가 찢기고 상처를 얻어 예전의 자태는 찾기 힘들다.

 

 집단시설지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리숲 산책에 나선다.

가을 성수기 속리산은 인파로 넘쳐난다.

하지만 이른 아침의 호젓함은 가히 속세를 떠나온 듯하다.

 

 무릇 낙엽 숲길의 운치를 가장 실감할 수 있을 때로는 여명이 깃들고

숲 속에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는 즈음이다. 이맘때 같으면 오전 7~8시 사이다.

 

 아침 햇살이 부스스한 안개 숲을 뚫고 쏟아지는 숲길의 운치란 로맨틱한 분위기의 극치이다.

살짝 이슬이 내려앉은 낙엽과 잎새는 더욱 생기 있게 빛나고

마치 부드러운 낙엽 카페트를 걷기라도 하듯 발걸음 또한 가뿐하다.

때문에 기왕 만추 숲길의 묘미를 느끼고자 나섰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가을빛 내려앉은 법주사.

 법주사 매표소를 지나며 오리숲의 진수가 펼쳐진다.

아름드리 숲길 한쪽 물가 옆으로 난 탐방로도 운치 있다.

낙엽이 깔린 오솔길로 아침 산책에 나선 연인들이 즐겨 찾는 코스다.

 

 법주사 구경을 잠시 미루고 세심정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자면 오리숲의 운치를 지속시킬 수 있다.

고즈넉한 숲길 한편으로 상수원이 있어 이른 아침 펼쳐지는 물안개의 광경을 목도할 수 있다.

상수원 쪽으로 철망이 쳐져 물가로 내려 갈 수는 없지만 호수 끄트머리까지 걷게 되면

철조망이 걷히고 물안개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감상 포인트를 만날 수 있다.

무채색의 물안개가 오렌지 빛 아침 햇살에 물들어 가며 수면을 덮어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법주사에서 세심정 휴게소까지는 걸어서 1시간 남짓이 걸린다.

휴게소 앞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문장대(1054m)와 정상인 천황봉(1058m)으로 오르게 된다.

왕복 5~6시간이면 족하다.

 

속리산의 또 다른 이름처럼 불리는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때 창건한 고찰로 오리숲 여정에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이다.

'부처님의 법이 머문다(法住)'는 뜻을 가진 명찰로

고려 공민왕, 조선 태조, 세조 등 국왕의 기도처가 됐던 만큼 국보급 문화재를 3점이나 보유하고 있다.

 

높이 33m의 금동미륵대불, 팔상전, 쌍사자석등, 벽암대사비 등 볼거리도 가득하다.

또 오리숲 인근 사내리 근사한 숲 속에 야영장이 있어 오토캠핑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