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치악산 구룡사 입구에서 200년이 넘게 자란 은행나무. 하나의 둥치에서 뻗은 여러 가지들이 마치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다. |

▲ 풍경이 매달린 구룡사 대웅전의 처마는 단청이 유난히 곱다. |

▲ 성황림의 성황당 오른편으로 아버지나무인 전나무가, 왼편으로는 어머니 나무인 엄나무가 서있다. |

▲ 조선 왕실이 일반 백성들의 소나무 벌채를 금지하기 위해 바위에 새겨놓은 황장금표. 구룡사쪽 치악산 국립공원 매표소 부근에 놓여있다. | | |
#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는 법을 숲에서 배운다
숲은 멀리 있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 닿을 수 있는 곳에 숲은 있다.
정작 ‘숲으로 가는 길’을 막아서는 것은, 물리적인 거리보다는 어떤 의무감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상에 오르겠다는 각오없이는 좀처럼 산을 찾지 않는다.
이런 연유로 산 아래쪽의 울창한 숲은 ‘등산의 목적’ 없이는 좀처럼 만날 수 없다.
등산의 목적으로 숲을 찾았다고 해도, 바삐 지나쳐야 하는 까닭에 숲의 본연의 모습을 만나기는 어렵다. 이런 류의 의무감이나 욕심을 버리고 숲에 들 때 비로소 숲은 ‘가까이 다가온다’.
치악산의 정상인 비로봉을 밟는 등산코스는 만만치않다.
성남매표소에서 주능선을 따라 비로봉에 올라 상원사로 하산하는 산행길은 12시간이 넘는 코스다.
구룡사에서 출발해 비로봉을 밟는 가장 짧은 코스인 이른바 ‘사다리병창’ 코스도
산행시간만 6시간30분쯤은 족히 잡아야 한다.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는 힘든 코스 탓에 산행을 엄두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치악산의 숲에 발을 들이지 않고, 산을 찾은 등산객들도 정작 숲길을 바쁘게 지나치고 만다.
치악산 숲의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이지 싶다.
그러나 치악산 자락의 숲의 아름다움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찾아볼 만하다.
치악산으로 드는 숲 중에서는 북쪽 구룡사쪽으로 드는 부드러운 숲길이 백미다.
이 길에는 아름드리 황장목이 늘어서있다.
황장목이란 흔히 금강소나무라고 부르는 토종 소나무.
껍질이 붉다고 해서 적송이라고도 불리고, 아름다운 자태 덕에 미인송이라고도 일컫는다.
치악산은 예로부터 ‘황장봉산’으로 불려왔다.
황장봉산이란 왕실에서 쓸 황장목을 길러내는 산이라는 뜻인데,
이런 뜻을 알리기위해 조선시대에 치악산 아래 바위에 ‘황장금표(黃腸禁標)’라는
글을 새겨놓고 민간의 벌채를 금했다.
황장금표는 전국 60여곳에 세웠는데, 이곳 구룡사쪽으로 접어드는 길의 황장금표도 그중 하나다.
치악산 숲길 여행은 이 길을 따라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 금강소나무 숲길을 따라오는 청아한 물소리
치악산의 황장금표는 국립공원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왼편 경사면의 숲에 살짝 숨어있다.
표를 끊고 걸음을 서두르다보면 자칫 놓치기 쉽다.
황장금표 앞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면 주변에 솟아있는 붉은색 껍질의 금강소나무가 새삼스럽다.
황장금표가 세워질 당시만은 못하겠지만,
이 길에는 소나무가 하늘을 가려 지붕을 만든 숲길이 군데군데 이어진다.
치악산 황장목의 아름다움은 구룡교건너 구룡사의 일주문격인 원통문에 이르러서 절정을 이룬다.
이쪽의 소나무 숲에는 저마다 다른 크기의 금강송들이 한데 어울려 서있다.
그만그만한 나무들이 줄지어 빼곡히 들어선 조림지의 숲과는 격이 다르다.
조림한 숲에서는 처음에 숲의 규모에 입이 벌어지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금세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치악산의 금강송 숲에 들면 처음에는 무덤덤하다가,
저마다 크기가 다른 나무를 찬찬히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탄성이 나온다.
원통문의 숲길을 들어서 부도탑을 지나면 구룡사다.
원래는 절터의 연못에 9마리 청룡이 있던곳에 절을 지었다고 해서
아홉 구(九)자를 써 구룡사(九龍寺)였다는데,
이후 쇠락한 사찰의 번성을 위해 절 입구 거북바위의 혈을 끊고,
다시 이으면서 거북 구(龜)자를 쓴 구룡사(龜龍寺)로 이름이 바뀌었다.
절집 앞에는 수령 200년을 넘긴 잘 생긴 은행나무가 부챗살처럼 가지를 뻗고 있다.
구룡사를 지나서 몇걸음이면 구룡폭포의 물소리를 만난다.
숲길을 걷는 내내 발목을 잡았던 물소리가 이곳에서 더 청아한 소리를 낸다.
크지는 않되 부드럽게 떨어지는 폭포 아래는 쪽빛의 물이 그득하다.
폭포 주변으로는 단풍나무들이 무성한데, 마치 작은 손바닥같은 진초록의 잎을 활짝 펼쳐놓고 있다.
단풍이 빨갛게 물드는 가을에 붉게 물든 단풍과 어우러질 폭포의 풍경은 그저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 비밀스러운 그 숲에는 신이 깃들어 산다
치악산의 남쪽 자락에는 신림면이 있다.
신(神)이 사는 숲(林)이라고 해서 ‘신림(神林)’이다.
신림면 성남리 마을 초입에는 치악산에 삶을 기대고 살던 화전민들이
신이 산다고 믿어왔던 성황림이 있다.
이 숲은 일제시대이던 1940년에 ‘조선보물고적명승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가,
해방 후인 1962년에 천연기념물 93호로 다시 지정됐다.
성황림 숲은 지금 철제 울타리로 둘러쳐있었고, 문은 사슬과 단단한 자물쇠로 잠겨있다.
과거에는 주민들이나 외지인들 모두 이 숲에 자유롭게 드나들었지만,
행락객들로 숲이 훼손되자 주민들은 1989년부터 아예 문을 닫아걸었다.
그 숲에 들어서려면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것이 순서다.
마을 이장으로부터 건네받은 열쇠를 자물쇠에 조심조심 끼어넣고 철문을 열었다.
울울창창한 성황림의 숲은 서늘했다.
숲 한복판에는 성황당이 서있다.
성황당을 마주보고 오른편으로는 까마득히 둥치를 뻗어올린 전나무가,
왼편으로는 엄나무가 오색천을 휘감고 서있다.
성황당 주변은 흙이 돋우져있어 마치 신을 위한 제단과도 같다.
환웅 무리 삼천을 이끌고 내려왔다는 신단수. 신화 속에서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만나는 신단수가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 ‘신이 사는 숲’의 열쇠를 받아드는 법
성황림의 숲은 원래 아랫당숲과 윗당숲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러던 것이 아랫당숲이 훼손되고, 윗당숲의 일부만 살아남아 지금의 성황림으로 보존됐다.
이제 명맥은 끊기고 말았지만,
마을 주민들은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매년 4월8일과 9월9일 성황당에 모여 제사를 지내왔다.
일제 시대 흉년으로 마을이 피폐해지면서 한해 제사를 걸렀더니,
몇 집의 소가 죽어나가고 온갖 흉사가 끊이질 않아 서둘러 제사를 올린 일도 있었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의 이런 옛 이야기쯤이야 한낱 미신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듯 아름다운 숲이 지켜진 것은 마을 사람들의 두려움과 경외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성황림의 숲으로 드는 문의 자물쇠는 그저 볼거리만을 찾는 행락객들에게는 열리지 않는다.
찬찬히 숲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에게만 열쇠가 주어진다.
여럿이 모여 함께 찾아가면 열쇠를 얻을 확률은 더 높다.
성황림으로 드는 열쇠를 쥐고 있는 성남리의 김명진(44)이장은
“마을 주민들이 성황 숲을 관리하고 있는데,
성황숲을 알아보는 사람에게만 열쇠를 내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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