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강원도 정선 화절령 도롱이 못

천화대 2007. 8. 3. 08:17
인간에 버림받고 하늘을 품은 연못
정선서 영월로 ‘꽃꺾기재’ 넘다 만난 도롱이못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의 원시림 속에 비밀처럼 숨어있는 도롱이 못. 흘러드는 물없이 산중에 절로 만들어진 습지 못의 풍경은 쭉 뻗은 숲과 어우러져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특히 이른 새벽 안개에 싸인 풍경은 감탄스럽다.

도롱이 못 주변의 숲은 촉촉한 습기를 머금고 있어 나무마다 진초록 이끼가 자라고 있었다.(사진 왼쪽) 습지에 물이 차올라 밑둥이 썩은 낙엽송 거목들이 쓰러져 못 위에 떠있다.(오른쪽)
강원 정선군 사북읍에서 영월군 상동으로, 또 예미로 넘어가는 고갯길 화절령(960m).
주민들은 이 고개를 ‘꽃꺾기재’란 정겨운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석탄산업의 활황기 때 석탄을 싣고나르던 운송로로 사용됐던 고갯길입니다.
이 길은 탄광은 문을 닫고, 탄부들도 뿔뿔이 흩어져버리면서 오래 전에 쓸모를 잃고 버려졌습니다.

이렇듯 오래 버려진 길인 화절령을 오릅니다.
폐광된 광산을 끼고 있는 마을의 흔적과, 한때 갱부의 아이들이 북적였을 분교 터를 지나면
온통 야생화들이 지천인 숲을 만납니다.
꽃을 꺾는다는 뜻의 ‘화절(花切)’이란 고개 이름은
아마도 계절마다 고갯마루에 이렇듯 야생화들이 만발했기 때문이겠지요.

그 화절령을 올라 해발 1000m쯤의 숲에서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연못을 만났습니다.
아름드리 낙엽송이 하늘을 찌를 듯 서있고, 시누대와 관목 사이로 야생화들이 아우성처럼 피어난 숲에
이국적이고, 또 황홀한 못이 숨어있었습니다.
이따금 산새소리만 정적을 깨는데, 고요하게 못에 담긴 물은 세상의 모든 풍경을
거꾸로 반영해놓고 있었습니다.

쭉 뻗은 진초록의 나무들이며, 구름이 떠있는 푸른 하늘이
못 안에서 인화된 컬러사진처럼 또렷했습니다.
풀숲을 뒤지자, 물을 마시러 왔었는지 멧돼지며 고라니, 산토끼의 발자국도
이쪽 저쪽에 선명하게 나있었습니다.
 
이 못 앞에서는 캐나다 로키산맥 깊은 곳의 호수를 떠올리게 됩니다.
도무지 대한민국의 땅이 아닌 듯 싶은 너무도 이국적인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이 못 앞에서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 앉아 잔잔한 물을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몇시간쯤은 금세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물 무렵 그 못을 만나고 돌아와서도 그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밟혀서,
이른 새벽에 한 번, 또 화창한 한 낮에 한 번. 도합 세 번을 찾아갔었습니다.
갈 때마다 다른 각도의 빛을 받아 못의 풍경은 더할 수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사실 축구장 크기의 이 못이 생긴 건 아무리 길게 잡아도 5년이 채 안됐답니다.
인근에 스키리조트가 들어서면서 당시 지형조사를 했던 직원들이나,
누대에 걸쳐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주민들, 모두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못에 ‘도롱이 연못’이란 앙증맞은 이름이 지어진 것도 채 몇 달 되지 않은 일이랍니다.

그렇다면 도롱이 못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아직 누구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땅속 탄광의 갱도가 무너지면서
땅표면이 함몰돼 이런 습지가 생겼다고 추측할 뿐입니다.
 
인간은 자연을 파헤쳤지만, 자연은 재앙을 안겨주기보다는 이렇듯 습지를 만들어가면서
생채기를 스스로 치유해가고 있었습니다.
짐승들을 불러모으고, 갖가지 식물들을 키워가면서 생명을 보듬고 있는 것이지요.

이 무더운 여름, 그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의 산책을 권합니다.
도시는 가마솥같은 더위로 펄펄 끓지만, 태백과 정선, 영월 땅이 만나는
화절령의 해발 1000m안팎을 오르내리는 길은 지금 서늘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