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일산·日山)이라는 산이 있다. 강원 화천군 북쪽 해발 1190m에 이르는, 제법 큰 산이다. 해산은 아침해를 가장 먼저 받는다고 해서 붙인 이름. 북쪽에는 비경으로 이름난 비수구미와 평화의 댐이 있고, 동남쪽으로는 파로호를 안고 있는 아름다운 산이나 휴전선과 멀지 않은 탓인지 사람들이 그리 찾지도 않는다.
사람이 찾지 않으니 자연이 살아있을 수밖에. 울울창창한 원시림에는 천연기념물인 산양이 살고, 비수구미 계곡엔 열목어가 서식한다. 몇 년 전, 한 호랑이 연구가가 호랑이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힌 산이 바로 해산이다.
# 1. 해산령 쉼터에서 해산 쪽으로 오르는 길에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원시림이다. 흔히 원시림이라면 아름드리 나무를 꼽지만, 이곳의 나무는 그리 굵진 않다.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큰불이라도 났던 것인지, 기껏해야 지름 20~30㎝정도에 수령 50년 안팎의 나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무의 밀도와 수종의 다양성은 국내 어느 명산의 숲에 못지않다. 숲에 들어서면 나뭇잎이 하늘을 가려 한낮에도 어두컴컴할 정도다.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 피나무, 가래나무, 함박꽃나무, 생강나무, 박달나무, 산벚나무, 층층나무, 팥배나무, 엄나무… 따위를 굵은 다래 덩굴이 휘감아 오른다. 오락가락하는 빗속에서 산길을 걸었다.
아는 이는 알겠지만, 빗속의 산길을 걷는 재미는 각별하다. 나뭇잎을 두들기는 빗소리, 바위 아래를 흐르는 물소리로 숲은 온통 수런수런하다. 비오는 날의 숲은 향기 또한 더욱 진하다.
숲이 살아 있으니, 나물도, 약초도, 서식하는 동물도 많다. 당귀나 각종 취나물류, 두릅, 참나물 따위의 나물류는 지천으로 널려 있고, 심마니들은 이곳에서 산삼도 캐낸단다.
간혹 까치독사나 먹구렁이나 쇠구렁이 따위도 만날 수 있다. 산길을 걷다 ‘키우욱~키우욱~’산을 울리는 노루나 고라니 울음소리를 듣는 것도 어렵지 않다. 산 서남쪽 풍산리의 한 아주머니는 이곳에서 나물을 뜯다 어린 새끼를 거느린 멧돼지 가족을 정면으로 조우하고 혼비백산하기도 했단다.
길을 걷다 더러 만나는, 쓰러져 이끼로 덮인 채 흙으로 돌아가는 나무들. 아마 저 나무들 속에도 수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으리라. 사람들은 흔히 산을 가꿔야 한다고 말하지만, 가만히 놓아두는 것이야말로 좋은 숲을 조성하는 첩경이라는 걸 이곳에서 다시 한번 절감한다.
# 2. 해산령 쉼터에서 오르는 산길은 편안하다. 급경사가 거의 없어 산에 익숙지 않은 이에게도 전혀 어렵지 않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걸어도 좋고, 혼자 걸어도 좋다. 산길은 호젓하다. 지금까지 이 산에 오른 것이 5차례, 그렇게 산을 오르며 사람을 만난 적이 단 한번도 없었을 정도다. 산길에서 사람 만날 일이 없으니 철학자의 길이 따로 없다. 원시림 사이로 난 산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온갖 세상 잡사가 정리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쉼터에서 능선까지는 약 1시간30분 정도의 느긋한 숲길. 능선 부근에 이르면 수종이 신갈나무 일색으로 비교적 단순해진다. 능선은 북서~남동 방향으로 뻗어있다. 북서쪽으로 따라가면 해산터널 위를 지나 재안산에 이르고, 남서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1190m봉을 지나 해산6봉~해산2봉, 해산주봉에 이른다.
남동으로 방향을 잡았다. 능선길을 잠시 걷다 보면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그렇듯이 날씨가 좋으면 탁 트인 전망이 장관이다. 서쪽으로는 백암산, 적근산, 대성산, 복주산,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화악산 등을 잇는 산줄기가 굽이치고, 남쪽으로는 사명산, 죽엽산, 오봉산, 용화산으로 이어지는 산군이 멀지 않다. 하지만 지난 주말은 때마침 비 오는 날, 능선에는 안개가 가득차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헬기장을 뒤로하고 안개 사이로 난 능선길을 계속 걸었다. 산길 옆, 더러 어른의 키만큼 자란 풀이 성가시지만 길은 뚜렷하다. 능선길치고 오르내리막도 그리 심하지 않다. 해산령 쉼터에서 능선에 오르는 길만큼이나 쉬운 길이다.
# 3. 그러다 문득 만나는 찢긴 신갈나무들과 반쯤 불에 탄 나무들. 이쯤에서 주변을 살피면 포탄의 파편도 눈에 띈다. 해산 1190m 봉우리 남쪽 사면이 포사격 표적인 탓이다. 바위 위에 올라 남쪽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광활한 사면이 온통 벌거숭이다. 대소 구경의 포탄이 작렬하면서 나무와 풀을 태우고, 흙과 바위를 뒤집은 것이다. 멀리서 보면 보일 듯 말 듯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는 표적의 넓이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국내 최고의 청정지역에서 조우하는 이런 황량한 장면이라니. 남북의 화해가 진행되고 있는 것과는 별도로, 분단과 긴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이 산에 오를 때마다 실감한다. 하기야 해산터널을 지나 아흔아홉굽이 길을 지나면 나오는 댐만 해도 북한의 수공을 대비해 건설한 댐이 아니던가. 금방이라도 포탄이 날아들 것 같은 느낌에 이곳을 지날 때마다 걸음이 빨라진다. 사람을 보고도 느릿느릿 기어가는 팔뚝만한 쇠구렁이는 이런 산객을 비웃고.
찢긴 나무는 해산 6봉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사라진다. 산골짜기 저 아래에는 파로호의 시퍼런 물결. 지금이야 저리도 평화로운 모습이지만, 6·25전쟁 때 중공군 3개 사단이 섬멸된 곳이다. 파로호(破虜湖)라는 이름 자체가 이승만 대통령이 중공군을 섬멸한 것을 기념해 친필 휘호로 내린 이름이다.
계속해서 걸으면 해산5봉~해산주봉이 나온다. 해산주봉에서 동촌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나, 해산터널 쪽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곳에 자동차를 놓아둔 탓이다.되돌아오는 길에 다시 만나는 포사격 표적 인근의 찢긴 나무들. 아침해를 가장 먼저 받는다고 해서 해산이라 이름 붙인 산은, 아직도 진행중인 분단의 아픔을 절감할 수 있는 특별한 산이기도 하다.
사람이 찾지 않으니 자연이 살아있을 수밖에. 울울창창한 원시림에는 천연기념물인 산양이 살고, 비수구미 계곡엔 열목어가 서식한다. 몇 년 전, 한 호랑이 연구가가 호랑이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힌 산이 바로 해산이다.
# 1. 해산령 쉼터에서 해산 쪽으로 오르는 길에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원시림이다. 흔히 원시림이라면 아름드리 나무를 꼽지만, 이곳의 나무는 그리 굵진 않다.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큰불이라도 났던 것인지, 기껏해야 지름 20~30㎝정도에 수령 50년 안팎의 나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무의 밀도와 수종의 다양성은 국내 어느 명산의 숲에 못지않다. 숲에 들어서면 나뭇잎이 하늘을 가려 한낮에도 어두컴컴할 정도다.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 피나무, 가래나무, 함박꽃나무, 생강나무, 박달나무, 산벚나무, 층층나무, 팥배나무, 엄나무… 따위를 굵은 다래 덩굴이 휘감아 오른다. 오락가락하는 빗속에서 산길을 걸었다.
아는 이는 알겠지만, 빗속의 산길을 걷는 재미는 각별하다. 나뭇잎을 두들기는 빗소리, 바위 아래를 흐르는 물소리로 숲은 온통 수런수런하다. 비오는 날의 숲은 향기 또한 더욱 진하다.
숲이 살아 있으니, 나물도, 약초도, 서식하는 동물도 많다. 당귀나 각종 취나물류, 두릅, 참나물 따위의 나물류는 지천으로 널려 있고, 심마니들은 이곳에서 산삼도 캐낸단다.
간혹 까치독사나 먹구렁이나 쇠구렁이 따위도 만날 수 있다. 산길을 걷다 ‘키우욱~키우욱~’산을 울리는 노루나 고라니 울음소리를 듣는 것도 어렵지 않다. 산 서남쪽 풍산리의 한 아주머니는 이곳에서 나물을 뜯다 어린 새끼를 거느린 멧돼지 가족을 정면으로 조우하고 혼비백산하기도 했단다.
길을 걷다 더러 만나는, 쓰러져 이끼로 덮인 채 흙으로 돌아가는 나무들. 아마 저 나무들 속에도 수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으리라. 사람들은 흔히 산을 가꿔야 한다고 말하지만, 가만히 놓아두는 것이야말로 좋은 숲을 조성하는 첩경이라는 걸 이곳에서 다시 한번 절감한다.
# 2. 해산령 쉼터에서 오르는 산길은 편안하다. 급경사가 거의 없어 산에 익숙지 않은 이에게도 전혀 어렵지 않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걸어도 좋고, 혼자 걸어도 좋다. 산길은 호젓하다. 지금까지 이 산에 오른 것이 5차례, 그렇게 산을 오르며 사람을 만난 적이 단 한번도 없었을 정도다. 산길에서 사람 만날 일이 없으니 철학자의 길이 따로 없다. 원시림 사이로 난 산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온갖 세상 잡사가 정리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쉼터에서 능선까지는 약 1시간30분 정도의 느긋한 숲길. 능선 부근에 이르면 수종이 신갈나무 일색으로 비교적 단순해진다. 능선은 북서~남동 방향으로 뻗어있다. 북서쪽으로 따라가면 해산터널 위를 지나 재안산에 이르고, 남서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1190m봉을 지나 해산6봉~해산2봉, 해산주봉에 이른다.
남동으로 방향을 잡았다. 능선길을 잠시 걷다 보면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그렇듯이 날씨가 좋으면 탁 트인 전망이 장관이다. 서쪽으로는 백암산, 적근산, 대성산, 복주산,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화악산 등을 잇는 산줄기가 굽이치고, 남쪽으로는 사명산, 죽엽산, 오봉산, 용화산으로 이어지는 산군이 멀지 않다. 하지만 지난 주말은 때마침 비 오는 날, 능선에는 안개가 가득차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헬기장을 뒤로하고 안개 사이로 난 능선길을 계속 걸었다. 산길 옆, 더러 어른의 키만큼 자란 풀이 성가시지만 길은 뚜렷하다. 능선길치고 오르내리막도 그리 심하지 않다. 해산령 쉼터에서 능선에 오르는 길만큼이나 쉬운 길이다.
# 3. 그러다 문득 만나는 찢긴 신갈나무들과 반쯤 불에 탄 나무들. 이쯤에서 주변을 살피면 포탄의 파편도 눈에 띈다. 해산 1190m 봉우리 남쪽 사면이 포사격 표적인 탓이다. 바위 위에 올라 남쪽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광활한 사면이 온통 벌거숭이다. 대소 구경의 포탄이 작렬하면서 나무와 풀을 태우고, 흙과 바위를 뒤집은 것이다. 멀리서 보면 보일 듯 말 듯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는 표적의 넓이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국내 최고의 청정지역에서 조우하는 이런 황량한 장면이라니. 남북의 화해가 진행되고 있는 것과는 별도로, 분단과 긴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이 산에 오를 때마다 실감한다. 하기야 해산터널을 지나 아흔아홉굽이 길을 지나면 나오는 댐만 해도 북한의 수공을 대비해 건설한 댐이 아니던가. 금방이라도 포탄이 날아들 것 같은 느낌에 이곳을 지날 때마다 걸음이 빨라진다. 사람을 보고도 느릿느릿 기어가는 팔뚝만한 쇠구렁이는 이런 산객을 비웃고.
찢긴 나무는 해산 6봉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사라진다. 산골짜기 저 아래에는 파로호의 시퍼런 물결. 지금이야 저리도 평화로운 모습이지만, 6·25전쟁 때 중공군 3개 사단이 섬멸된 곳이다. 파로호(破虜湖)라는 이름 자체가 이승만 대통령이 중공군을 섬멸한 것을 기념해 친필 휘호로 내린 이름이다.
계속해서 걸으면 해산5봉~해산주봉이 나온다. 해산주봉에서 동촌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나, 해산터널 쪽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곳에 자동차를 놓아둔 탓이다.되돌아오는 길에 다시 만나는 포사격 표적 인근의 찢긴 나무들. 아침해를 가장 먼저 받는다고 해서 해산이라 이름 붙인 산은, 아직도 진행중인 분단의 아픔을 절감할 수 있는 특별한 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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