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남자의 꽃, 꽃향유
한국 들꽃문화원 원장 / 박시영
눈의 촉감을 어지럽히는 꿀과 향기의 보라 꽃풍...
보라색을 꿀과 향으로 뒤발라 놓으면 바로 이 꽃이 됩니다.
한 무리 지어 있는 이 꽃 자체가 향기와 꿀과 보라의 색으로 뒤범벅되어 요란한 느낌을 주는 것이 이 꽃의 전부입니다. 숨이 막히고 탄성을 지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여 있습니다. 또 그래야 건강에 좋을 것입니다.
이 꽃의 군락을 만나시게 되면 눈을 크게 뜨고 숨을 깊이 들이 쉬어야 제 맛이 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 꽃을 맞이하는 예의이지요. 당연히 벌과 나비가 진탕 큰 잔치를 벌이고 놀다 가는 것은 순서이구요.
이 꽃은 서로를 의지하며 어깨동무를 하고 한 곳에 큰 군락을 이루고 있어 더욱 더 큰 효과를 나타냅니다.
그야말로 한 송이씩 따로 떨어져 있다면 이렇게 큰 관심을 갖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진득한 꽃향유는 무더기로 밀집해 있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꾀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무더기로 와락 덤벼들지요. 가을의 꽃이라 소리 높이 불러 봅니다. 가을의 향이라 목청껏 외쳐 봅니다. 그래서 가을 남자의 꽃이라 외쳐 봅니다. 가을이 닥아 와 쓸쓸한 사내들! 의 어깨위에 고독이 덩어리로 떼그르 굴러 떨어 질때에 이꽃은 사내들을 위한 마지막 피난처의 보금자리입니다. 간단한 차림으로 뒹구는 낙엽을 밟으며 산으로 오르면 이즈음 제일 먼저 반기는 이가 바로 이 꽃향유의 수선스런 꽃향기입니다. 힘겨운 삶의 한자락 끝을 잡고 산으로 마음을 쉬러 오르려면 산자락 입구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와 가슴팍에 안기웁니다.
향기와 공기를 섞어 마시려면 숨을 벌컥 벌컥 들여 마시어야합니다.
향기의 달음박질소리가 점점 가까이 닥아 와 이내 사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 줍니다. 푸짐하고 소담스런 보랏빛 풍채를 거들먹거리며 백년손님을 기다리기나 한듯이 가슴을 열어 보여 줍니다. 꽃향유의 후한 반가운 인심에 가을 남자는 이내 세상의 생각을 죄다 잊어 버리고만 말게 됩니다. 아예 몸과 마음을 이 꽃향유의 냄새와 풍채에 몽땅 던져 버리고는 그곁에 앉아 서로의 신세를 담소합니다. 지나 간 세월을 펼쳐 보이며 서로의 고통스러움을 고자질해가며 가을의 향기속에 서로를 묶습니다. 사내는 생채기가 난 마음을 열어 보이기도하구요 꽃향유는 지난 번 여름 태풍 때에 찢겨진 가쟁이를 쳐들고 아파 해 합니다. 사람은 가을의 꽃을 읽고 가을의 꽃향기 추향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갑니다. 어머니의 참빗 솔같은 꽃향유의 꽃살 방망이로 볼과 가슴을 문질러도 봅니다. 응석어린 몸짓으로 꽃향유의 향기를 한웅쿰 콧구녕 속으로 집어넣어 봅니다.
지친 삶의 여정이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머릿속의 파도같은 상념이 조용히 사라집니다.
삶의 아픔이 향기에 녹아내려 땅바닥으로 스며 녹아 들어갑니다. 가슴의 생채기가 꿰매여지는 것 같이 마음이 편하여 집니다. 근심 걱정으로 접혀진 잡념의 주름이 다리미질해서 펼쳐지듯이 머릿속이 환하게 쫘악 펴집니다. 파란 하늘이 머리위에서 맴돌고 하얀 구름이 가을의 시작을 알립니다. 가을의 문이 열려 오고 고추 잠자리가 이제야 눈에 들어 옵니다. 온몸을 꽃향유에게 기대고만 맙니다. 온 생각을 꽃향유의 향기바다에 띄워버리고 아가처럼 머물고 있습니다. 천근의 육신을 보드라운 참솔빗같은 꽃살의 솔에 문질러 하늘로 두둥실 날아가고 있습니다.
가을 남자의 꽃, 꽃향유는 사내들의 마음에서부터 자라서 자연에서 꽃 피고 사내들의 삶을 영글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가을의 사내들이여 다가오는 올가을에는 꼭한번 자신의 어깨를 불러 세워 일으키고는 꽃향유의 향기에 온 몸을 한번 던져 보시기 바랍니다. 가을의 향에 취하고 색깔에 취하고 솜털같은 꽃살의 보드라움에 취해 우리는 그곳을 가을사내들의 또다른 보금자리라 말할 것입니다.
꽃향유는 가을을 준비하는 사내들의 꽃이라 외쳐 부르고 싶습니다. 한 다발 정도는 집에 가져다 병에 꽃아 놓으셔도 큰 지장은 없을 듯한데 그게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인가 봅니다. 어찌 그 향을 그대로 두어 허공으로 다 날려 보낸단 말입니까. 열매를 담는 자루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향기도 담을 수 있는 자루가 있어 이 꽃향유의 향기를 담아 올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허공으로 뿌려지는 향기가 너무나 아깝습니다.
꽃향유는 꿀풀과의 여러 해를 살아가는 꿀과 향이 짙게 나는 보라색 들꽃입니다.
배향초, 붉은향유, 노야기라고도 부르지요. 60센티미터 정도까지 큽니다. 줄기에는 사각의 각이 지어져 있고 가지를 많이 치고 올라가지요. 줄기 끝이나 잎 겨드랑이에서 강아지 풀 이삭 같은 꽃이 한쪽으로 치우쳐서 피는데 색깔이 너무나 강렬합니다. 홍두깨같이 길쭉한 꽃방망이 줄기에 꽃살과 꽃술이 한쪽으로 치우쳐 모여 핍니다. 어른 가운데손가락만큼의 꽃방망이가 한쪽 방향을 향해 꽃을 담고 있습니다. 뒷면은 넓적하고 휑하니 앞에만 꽃술이 몰려 피어 있어 앞뒤의 모습이 완전 다르게 보입니다. 꽃살과 꽃술이 산 아래 쪽 마을을 향해 핍니다. 가을에 들어서면 보라색 혹은 자주보라색으로 큰 무리 지어 꽃이 피는 모습이 아주 장관입니다. 꽃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쳐 오는 듯이 밀려옵니다.
봄철 어린 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습니다.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돌아 올 수 있게 하지요.
즙을 내 비린내 나는 음식에 넣어 먹으면 비린내를 없앨 수 있습니다. 꽃향유 꽃방망이를 따가지고 와서 찹쌀가루를 발라 살짝 기름에 튀겨 먹으면 색다른 맛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전초를 목욕물에 담가 목욕을 하면 향이 배어 나와 상쾌한 목욕을 할 수 있습니다. 가을에 벌이 어디서 어떻게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지 꽃향유 주변에는 꿀벌들의 소리가 많이 들립니다.
그래서 민가에서는 꽃향유 전초를 잘 말려 두었다가 감기나 두통, 이뇨, 설사 날 때에 끓여서 마시기도 합니다. 입 냄새가 많이 나는 분들은 꽃향유을 즙으로 만들어 양치질 하면 입안의 냄새가 없어진다고 하니 잘 이용하면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크게 각광을 받지 못하고 하찮은 잡초같이 산자락을 차지하고는 있었습니다. 그렇게 때를 기다리다 아주 뜨거운 태양 빛이 가실 때쯤 온 무리가 힘을 합쳐 떼거리로 꽃을 토해내 시선을 끌어 모으게 하는 것입니다. 잎사귀의 피부에서 조차 젖먹던 힘까지 다해 향기를 쏟아 냅니다. 뱃속에 있는 내공의 힘을 모아 놓았다가 세상의 보라색이 무언가를 알려주기나 하려는 듯 가장 보라의 색으로 있는 힘껏 토해 냅니다. 아주 진하게. 아주 깊은 맛으로.
줄기와 잎사귀를 예쁘다고 더 흔들어 대거나 만져 비벼주면 더욱 더 신이 나서 자신의 저 몸속 깊은 곳에 있는 향까지 모두 다 뱉어 내 진한 냄새를 털어 냅니다. 벌과 나비가 이를 외면하겠습니까? 사람들이 외면하겠습니까? 이제부터는 꽃향유라는 이 들꽃을 기억하셨다가 늦은 여름쯤에서부터 산자락이나 산모퉁이 근처에서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가슴에 향기를 넉넉히 담아 놓고 한 해를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눈에 이 아름다움을 심어 놓아야 맑은 마음과 정신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또 한 해를 살아 갈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