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야초

동자꽃

천화대 2011. 4. 30. 16:16

명주실같은 고운 손을

어찌 놓으리! 동자꽃

  

 

한국 들꽃문화원 원장 / 박시영

 

 

 

 

미 칠월의 한 여름에서부터 꽃망울은 피기 시작하지요.

이때 그것 그대로 가슴에 고이 간직하였다가 그해 겨울이 돼서야 꺼내 보아야만 제대로의 맛이 나는 꽃이 있습니다. 그 이름 동자꽃입니다.  모든 꽃들이 대지위에서 모두 다 가버리고 홀로 가슴에 남아 피는 꽃이지요. 한여름 화려하게 피웠다가 다시금 겨울에 한번 더 사람의 마음에 우아하게 피는 꽃입니다. 그해 한 여름에 눈여겨 가슴에 담아 놨다 기온이 시리면 시릴수록 더 진하게 가슴에 피는 꽃이 바로 동자꽃입니다. 겸손한 우아함을 만나 보세요. 양보하는 듯 손을 내저으면서 화려함이 배여있는 꽃을 들여다 보세요. 동자꽃의 연홍색 색감에 눈을 맞쳐 보세요. 슬픔과 인연과 기다림이 흠씬 눈가에 묻어 날 것입니다. 어린 동자의 명주실같은 고은 손이 동자꽃을 내려다 보는 여러분의 눈을 곱게 슬픔의 인연으로 바래다 줄 것입니다. 깊은 강원도 산골짜기의 팔월의 동자꽃이 그때는 꽃의 맛이 썩 나지 않지만 추운 한 겨울에 손을 비벼가며 바라보는 모습에서 그의 진맛을 진정으로 느낄 수가 있는 것 입니다. 참 희한한 일이죠 괘나 됐겠죠, 전설로서 내려오니 말입니다.


강원도의 어느 절간에 노스님과 동자가 자연의 한끝자락을 붙잡고 계절을 벗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봄과 여름을 다 먹고 가을을 먹으며 겨울을 준비하려는 노스님의 독경소리에 동자의 키도 그만큼 자라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버려진 동자와의 인연도 발써 두해걸음. 절간의 대를 이으려 공을 드리고 보살폈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절간이라 하면  마을과는 한참을 떨어져 속세와의 인연을 두려 그리 깊이 산속으로 들어가 있었나봅니다. 겨울의 공양은 독경 소리마져 잠시 쉬게 하였습니다. 노스님은 잠시의 생각으로  마을로 공양을 하러 가시게 되였고 동자는 홀로 남아  절간을 지키게 되였습니다. 절간을 나서는 노스님을 어린 동자는 못내 아쉬워 배웅하며 절간 문턱에서 뒤 돌아섰습니다. 험준한 산 골짜기를 돌아돌아 마을에 당도한 스님은 부지런히 공양을 바라에 쌓아 바삐 돌아 가기만을 생각하며 발품을 재촉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노스님은 등짝에 메고 온 바라를 바짝 추스르고 절간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였습니다. 걸음마다 스님의 발에는 절간에서 기둘르고 있을 동자가 발폈습니다. 동자야 내 휑하니 가려마.

 

 

 

절간이 가까울수록 하늘이 닿아서인지 숨소리마저 가빠져 갔습니다. 동짓달의 싸늘 한 기운과 축축한 구름의 냄새는 이내 스님의 생각을 불안 하게 만들었습니다. 계곡과 구릉을 넘을 적마다 닥아오는 안개는 스님의 걱정을 꿰뚫어 맞추고 말았습니다. 눈발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동자야 이제 다 와 간다. 쬐끔만 기다려라. 있는 힘껏 몸부림을 쳐서 올라 간대해도 동서남북을 가릴 수가 없이 쏟아지는 눈발이 점점 거세어져만 갔습니다. 가린 시야는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를 구분 못할 지경이라 이내 몸을 새처럼 구부리고 바위 밑에서 눈을 피하며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었습니다. 쌓이는 눈을 피하기 위해 바위와 바위틈새에서  간신히 몸을 움츠리고 눈이 그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것 이였습니다. 동자를 생각하는 일념으로 공간과 시공이 모두 멈춰버린 바위틈에서 스님은 동자의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동자야, 동자야, 쪼금만  쪼금만 더 기다려라.  내 어이 명주실같이 고은 너의 손의 인연을 이리 놓을 수 있단 말인가, 동자야 기둘러라 잠시만. 저절로 나오는 신음소리는 절규의 동물 소리였습니다. 고이 기둘러라. 동자야. 무서워 마라. 스님의 걱정은 포효를 하고 있었습니다. 절간을 비운 사이 어린 동자는 노스님의 생각과 쏟아지는 새까만 눈에 공포되여 스님을 찾으려 절간을 나섰습니다. 스님에 대한 걱정과 자신에게 업습해 오는 공포로 어린 동자는 죽음의 절벽 끝에서 새끼짐승의 소리로 스님을 불러 외쳐댔습니다.
스님, 스님, 할아버지스님.

 

 

 

어린 동자는 자신보다도 더 강한 눈 사이를 헤집고 할아버지스님을 찾으러 문 밖을 나선 것입니다.

당장은 그저 할아버지스님의 손을 잡아 보는 것만이 동자로서의 할 일이라 생각 되였던 것이지요. 절간의 문턱을 나서자마자 어린 동자는 덫에 걸린 새끼짐승처럼 눈 속에 같히고 말았습니다. 몸부림치면 칠수록 눈 속에 깊이 파묻혀 그만 할아버지스님의 이름만 울부짖다 눈속에서 정신을 놓고 말았습니다. 어린동자는 명주손같은 손목을 허공에 내저으며 할아버지스님을 찾다 찾다 그리 죽고 말았습니다. 아련히 들려오는 동자를 찾는 할아버지스님의 울부짖음을 뒤로 한 채로 말입니다, 계곡 바위틈새에서 있던 스님과의 거리만큼이나 동자와의 인연도 멀었던 것이지요. 동자야, 동자야. 스님이 도착해 눈구덩이에서 동자를 발견하게 된 것이 절간 초입이라서 스님은 더욱이 이를 아파했었던 것이지요! 동자를 가슴에 안고 부르짖는 소리는 계곡의 눈물이였을 것입니다. 하얀 눈덩이는 스님의 슬픈 눈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동자는 스님의 품 대신 흙의 품으로 고스란히 안혔습니다. 이듬해 스님은 밝은 칠월의 햇살의 안내를 받으며 동자의 무덤으로 가 보게 되었습니다.

 

 

 

동자의 둥굴 넓적한 얼굴에 파르스름한 까까머리를 생각하며 무덤을 찾았습니다. 무덤을 한바퀴 둘러 보고 날 쯤에 예전에 보지 못했던 붉은 꽃 한송이가 무덤가에 피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 보니 볼그스레하고 펑펑짐한 면적의 둥그렇고 푸짐스런 얼굴같은 꽃이 한송이 피여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뭉툭한 꽃살의 끄트머리는 영락없는 동자의 빡빡머리 행색과도 너무나 같아 보였었지요. 가까이  더 가까이 볼수록 동자처럼 느껴지는 이 꽃을 보시던 스님은 그래 바로 네가 동자구나 동자야 동자가 꽃이 되었네 이 꽃은 동자꽃이구나라고 했지요. 해서 그 이름 지금까지 동자꽃이라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여러 해 살이 석죽과 초본 식물입니다.

원래 이름은 전추라화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이뜻말은 한 여름이 지나서야 꽃이 피기 시작한다는 의미로 전추라화라 하였던 것입니다. 동자꽃 종류로는 가는동자꽃 제비동자꽃 수레동자꽃 털동자꽃 흰털동자꽃등이 있습니다. 요즘 우단동자꽃이 새로이 이민을 오셧지요. 동자꽃을 달리 부르는 이름으로는 참동자꽃 받동자꽃 북동자꽃 호동자꽃 민동자꽃 왜동자꽃등으로 부릅니다. 다 자란 것은 어른 무릅팍에서 허벅지까지 올라 옵니다. 마디마디가 길고 줄기가 함께 모여 자라지요.

 

잎자루가 없이 원줄기에 긴 타원형으로 생겼는데 잎사귀 끝이 뾰족해요. 꽃은 초여름부터 피기 시작해서 초가을까지 피어요. 꽃은 연홍색 짙은적색 혹은 오랜지색으로 핍니다. 다섯 개의 꽃살을 갖고 있는데 꽃살 끄트머리가 뭉툭해서 더욱 정감이 많이 갑니다. 꽃자체가 여유로우며 둥굴 넓적한 후덕함이 후한 인심을 주는 것같아 꽤나 다정다감해 보입니다.

 

 

한참을 들여 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왠지 측은하면서 더 오래보면 눈물이 자신도 모르게 맺혀져요.

어린 동자의 생각이 자꾸나서 그렇습니다. 동자꽃 전초에는 해열 해독의 효능이 있고 두창 치료에도 적용되어 왔다고 했습니다. 동자꽃 저 구석에서 나오는 동심이 분명 슬픔을 노래하는 것 같습니다. 깊은 산속 계곡에서 만나는데 그 순간 기분이 착 가라않는 것은 저 만의 생각이 아니랍니다. 마을을 향한 길가의 양 옆 사이에 나래비로 모듬지여 있어요. 갖은 포기 사이로 연홍색의 머리를 디밀고 쪼옥 서 있지요. 또 절간 근처에도 자생적으로 많이 분포 되여 있습니다. 절간으로 가는 오솔길에는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나 있습니다.

 

슬프면서도 앙증스럽고 장난기있는 박박머리 동자의 천진스런 모습을 이 동자꽃으로 한번 만나 보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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