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42번국도 명소들(뇌운계곡,원당계곡,문희마을,구미정,무릉계곡)

천화대 2008. 7. 24. 14:18
42번국도 명소들

정선의 아우라지 부근 송천에서 만난 평화로운 풍경. 잡히는 것이래야 손가락 굵기의 피라미가 고작이지만, 이렇게 맑은 강가에 나와서 바위에 걸터앉아 낚싯대를 드리우면 마치 한폭의 동양화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평창강변에서 만난 오리떼들. 국도에서 샛길로 접어들면 이런 풍경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동강변의 진탄에서 여울을 따라 내려가는 카누를 만났다. 진탄이란 ‘긴 여울’을 뜻하는 이름이다.

문희마을 뒤편 칠족령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동강의 풍경. 굽이치는 물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식당을 겸하는 정육점이 유독 많은 임계의 한우영농조합직판장 식당에서 내놓는 1등급 한우 등심.
# 휴가철 강원도의 맛을 가장 짙게 느낄 수 있는길 …42번 국도.

매번 같은 길은 택하는 것만큼 지겨운 것이 또 있을까.
‘속도’로 위안받긴 하지만 늘 타고가는 고속도로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하기야 풍경에 눈 둘 여유가 없는 고속도로에서는 어떤 길이나 다 똑같다.
 
100㎞가 넘는 속도로 맹렬하게 달리면
경부고속도로나 서해안고속도로나 영동고속도로나 다 매한가지란 얘기다.
결국 고속도로란 길의 의미 중에서 ‘출발지와 목적지를 연결한다’는 것 외에는 없다.
길 위에 올라서 옆을 둘러볼, 뒤를 돌아볼 손톱만큼의 여유도 없다.

끝없이 정체가 계속될 때도 앞차의 미등만을 주시할 수밖에 없는 길이다.

그러나 국도는 다르다.
그 길에서는 속도를 늦출 수도 있고, 갓길에 차를 댈 수도 있다.
수많은 갈림길을 만나고, 그 길에서 샛길로 찾아들 수도 있다.
구불구불 곡선의 고개를 저속으로 넘기도 하고, 강물과 어깨를 끼고 달릴 수도 있다.
 
길가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삶은 또 얼마나 다양한가.
자전거로 하교하는 말끔한 교복의 학생이 있고,
공공근로를 하러 나온 아낙들의 피곤한 어깨도 있고,
당산나무 아래 걸터앉은 촌로의 지루한 하품도 있다.
모두 다 속도를 늦출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바야흐로 휴가철의 한가운데 들어섰다.
이번 주부터는 고속도로들도 행락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룰 터다.
이글거리는 햇볕아래 끝없이 차량들이 늘어선 고속도로의 정체는 그야말로 지옥과 같다.
 
고속도로가 가진 단 하나의 미덕인 ‘속도’마저도 얻을 수 없다면,
미련없이 고속도로를 내려서는 편이 영리하다.
“아무리 막혀도, 그나마 고속도로가 더 빠르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출근길도 아니고, 촌각을 다투는 계약이 걸린 것도 아니다.
번잡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쉬자는 ‘휴가’ 아닌가.

여름 휴가에 꼭 맞는 국도가 바로 42번 국도다.
알다시피 국도의 홀수번호는 남북을 종단하고 짝수번호는 동서를 횡단한다.
짝수인 42번 국도는 인천에서 출발해 경기도와 강원도의 동해를 잇는다.
 
서해에서 시작해 동해까지 이어지는 장장 326.4㎞의 길이다.
길은 명소란 명소는 죄다 훑는다.
휴가 목적지가 강원도라면 이 길을 택하자.
아니 이 길을 달리기 위해 강원도를 휴가지를 택하는 것도 좋겠다.

# 새말에서 시작해 안흥을 지나 평창까지

42번 국도는 인천에서 출발해 수원과 이천, 여주, 원주를 잇지만,
적어도 새말까지는 ‘우회도로’ 이상은 아니다.
번잡스러운 시내를 관통해야 하는 탓에 이렇다 할 정취는 없다.
 
고속도로가 정체 중이라면 모를까, 새말까지는 42번 국도를 타야 할 이유가 별반 없다. 영동고속도로 새말나들목 부근에서부터 ‘진짜 42번 국도’가 시작된다.
새말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서 나와 안흥방면으로 우회전만 하면 가볍게 국도에 올라선다. 원두막을 지어놓고 삶은 옥수수를 파는 주민들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한다.

새말을 지나면서 길은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전재(540m)를 넘어가면 안흥이다.
낙엽송 울창한 내리막길에 안흥찐빵의 원조집인 ‘심순녀안흥찐빵’(342-4460)이 있다. 주인 심순녀(64)씨가 스물 네살부터 찐빵을 만들어왔다니 올해로 꼭 40년째다.
갓 쪄낸 찐빵은 쫄깃하게 씹힌다.
팥소도 달지 않아 깊고 구수한 맛이 느껴진다.

안흥을 지나 힘겹게 문재터널(800m)을 넘어서면 평창이다.
여기서부터는 강원도 산촌마을의 정취가 짙어진다.
고랭지 채소밭에서는 배추 수확이 한창이다.
옥수숫대는 키보다 더 높이 훌쩍 자라있고, 고추밭에는 청고추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길은 곧 계촌천의 물줄기와 만난다.
래프팅으로 유명한 뇌운계곡이다.
콰르르 소용돌이치며 힘차게 여울이 흐른다.
 
어차피 느릿느릿 가는 길.
국도에서 빠져 뇌운계곡 안쪽으로 들어서면 다수리, 계장리, 후평리를 지난다.
비포장과 포장길이 반복되는 길은 길가의 집에 바짝 붙어 지난다.
 
차창으로 담벼락 안이 들여다보일 정도다.
내친 김에 원당리 쪽으로 더 들어서면 원당계곡이다.
외지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
계곡 물은 맑디맑아 진청색으로 빛난다.
 
원당리 주민들은 계곡 상류에 물통을 묻고 이 물을 먹는단다.
‘먹는 물’이 계곡을 타고 흘러내려 계곡을 이루고 있으니,
그 물색이 얼마나 맑을까.
 
다시 42번 국도로 찾아들면 국도변에 ‘평창송어양식장’(033-332-0505)이 있다.
1969년 국내에서 최초로 송어양식을 시작한 곳이라는데, 횟집을 겸하고 있다.
가지런히 썰어서 내놓는 선홍색 송어 살이 쫄깃하다.
 
콩고물에 묻혀서 새큼한 초장과 곁들여 먹는 맛도 좋고,
갖은 야채와 버무려서 비빔회로 만들어 먹어도 좋다.
더운 여름에도 온도가 13도를 넘지 않는다는 용천의 차가운 샘물을 이용해
송어를 길러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 동강 거슬러 오르면 조양강, 조양강에서 더 오르면 골지천.

국도변 저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평창강을 감상하며 미탄 쪽으로 달려
멧둔재 터널(510m)을 지나면 동강이 모습을 드러낸다.
국도변의 표지판은 래프팅으로 유명한 진탄나루와 동강변의 문희마을이 지척임을 알린다.
표지판의 화살표대로 우회전해 국도에서 빠져나온다.
국도에서 꺾어져 진탄나루까지는 7㎞, 그리고 문희마을까지는 11㎞다.

동강에서 래프팅이 처음 시작됐던 것은
육로로 닿지 않는 강변마을의 때묻지 않은 풍광 때문이었다.
길을 따라갈 수 없으니, 강에 보트를 띄워서라도 숨은 비경을 만끽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정선군에서 동강 일원에 잠수교 5개를 잇달아 놓았다.
대부분의 강변마을이 찻길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영월쪽 동강변의 가정마을과 절메마을, 음지뉘룬마을, 진탄마을 등
4곳의 마을은 배가 아니고서는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남아있다.
옛 동강의 풍광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이들 마을을
강건너에서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문희마을이다.
 
마을 앞의 동강가에는 오리들이 유유히 떠있고, 유일한 교통수단인 줄배가 묶여 있다.
강변에는 강변마을 주민들이 강물에 몸을 담그고 반두를 들고 물고기를 쫓거나
다슬기를 잡고 있다. 평화로운 여름강변의 모습이다.

시간여유가 있다면 문희마을 뒤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백운산의 칠족령 전망대에 올라봐도 좋겠다.
전망대에 오르면 동강의 굽이치는 물줄기가 시원스레 한눈에 들어온다.
칠족령까지는 왕복 3시간이면 넉넉하다.

42번 국도는 다시 비행기재(503m)를 넘고 반점재(503m)를 넘어 정선에 가닿는다.
동강 상류를 따라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
가수리에서 천과 만나 동강을 이루기 전인 조양강이 발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더 거슬러 오르면 아우라지다.
아우라지는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 조양강으로 흐르는 곳이다.
국도는 골지천을 따라 나 있지만,
 
잠시 샛길로 들어 송천을 따라 7㎞만 달리면 레일바이크로 유명한 구절리역이 나온다.
꼭 레일바이크를 타지 않더라도, 송천을 바싹 끼고 이어진 기차 선로의 풍경만으로도
낭만적이다.

# 거기서는 길을 잃어도 좋겠다… 임계 사거리

아우라지로 되돌아 나와 골지천을 따라가다 큰너그니재(720m)를 넘으면 임계다.
읍내에는 ‘임계사거리’가 있다.
북쪽으로 가면 경포대가 있는 강릉이고, 남
쪽으로 가면 한여름에도 밤이면 오슬오슬 추위가 느껴지는 태백.
서쪽은 동강으로 알려진 정선이고,
동쪽은 망상해수욕장이 있는 동해시다.
 
사거리에서 어느 길로 가든 이 여름 휴가를 멋지게 보낼 수 있으니
이쯤에서 길을 잃어도 좋겠다.
어느 길로 향하든 아름다운 계곡이나 짙푸른 숲,
혹은 눈부신 백사장이 펼쳐지는 바다가 있으니….

임계에서는 구미정을 찾아가보자.

남도 땅에는 이름난 정자들이며 누각들이 즐비하지만,
강원도 땅에는 바닷가 쪽을 빼면 이렇다할 운치 있는 정자가 없다.
그 아쉬움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것이 바로 구미정이다.
 
임계천으로 이름을 바꾼 골지천변의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곳에 세워진 구미정은
조선 숙종때 공조참의를 지낸 이자가 당파싸움에 환멸을 느껴 낙향한 뒤 세운 정자다.
정자는 근래에 다시 지은 것이라 옛맛은 느낄 수 없지만,
 
주변의 풍광만큼은 감탄사가 나올 만큼 빼어나다.
구미정이란 이름은 정자 주변에 아홉개의 절경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그 아홉가지 아름다움의 내력은 정자의 현판에 또렷이 새겨 있다.

첫번째는 어량(어량). 통발을 놓고 튀어오르는 물고기를 잡는 풍광이다.
두번째는 주변의 밭둑의 아름다움을 일컫는 전주(전주).
세번째는 넓고 편편한 암반을 뜻하는 반서(반서)다.
이렇게 차례차례 아홉가지 경치를 하나하나 맞춰본다.

임계에서는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한우다.
좁디좁은 동네에 정육점만 7곳이 넘는다.
정육점 주인 대부분이 한우를 직접 길러내는 목장주인들.
제가 길러낸 한우를 파는 것이다.
 
고지대에서 자란 한우의 맛이 좋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것.
게다가 직접 길러낸 소를 잡아 신선한 고기를 파니 맛이 좋지 않을 수 없다.
가격 또한 1등급 한우 등심이 500g에 2만5000원선이니 저렴한 편이다.

임계농협 앞의 한우식당(033)을 추천할 만하다.

# 백봉령 넘어서 푸른 동해를 만나다

임계에서 42번 국도의 마지막 고갯길인 갈고개(750m)와 백봉령(780m)을 넘는다.

대관령이나 한계령, 미시령 등 백두대간을 넘는 다른 고개들은 가파르고 힘겹지만,
백봉령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이미 갈고개를 넘으면서 고도를 높인 터라, 백봉령은 산을 부드럽게 넘어간다.
등산으로 치자면 마치 길게 이어진 능선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백봉령 정상에서 내리막길로 접어들자마자
거짓말처럼 저 멀리 푸른 동해가 눈에 들어온다.
변변한 전망대조차 없고, 산을 깎아낸 흉물스러운 채석장도 시야를 막지만,
그래도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풍경은 감격적이다.
 
이제 300여㎞가 넘게 달려온 42번 국도도 종점이 머지않았다.
고개를 저쪽에서는 고도를 한껏 높여 놓았지만,
이쪽은 해발 0m까지 내려가는 길이라 내리막길이 길다.
길은 굽었지만, 한계령처럼 급하지 않다.
오르막이 그랬듯이 내리막 길조차도 유순한 편이다.

동해시로 내려서는 길에 옥계 쪽으로 빠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쯤에서 42번 국도를 버리고, 옥계를 지나 해안선을 따라 나있는
해안도로인 7번 국도를 타고 강릉이며 속초 쪽으로 다가갈 수 있다.

별다른 목적지를 정하지 못했다면 동해의 두타산 무릉계곡은 어떨까.
쌍폭포며 용추폭포까지 오르는 산길은 왕복 2시간이면 충분하다.
아이들도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완만한 데다 햇볕 한줌 들지 않을 정도로 숲이 짙어
더위를 느낄 수 없다.
 
계곡물은 한여름에도 5분이상 발을 담그고 있지 못할 만큼 차갑다.
맑은 물에 발을 담그면 더위쯤이야 저멀리 사라진다.

남쪽의 삼척이나 울진 쪽으로 가려면 동해시까지 다 내려가서
북평교차로까지 가서 우회전해 7번 국도로 올라서면 된다.
목적지를 어디로 삼았든 동해에서는 지척이다.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들자면 첫손으로 꼽히는 7번 국도와 만나는
북평교차로까지가 42번 국도의 끝이다.
이로써 326㎞를 달려온 국도의 끝은 동해시 북평 교차로다.
 
애써 표지판을 살펴가며 42번 국도를 따라왔지만,
어찌 보면 국도에 붙인 도로번호는 편의로 매겨놓은 것일 뿐.
42번 국도가 끝났다고 해서 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길은 매양 그곳에서 여러 갈래로 이어져 있다.

하지만 굳이 42번 국도로 달려가는 여정을 추천하는 것은,
느리고도 아름다운 풍경 속을 달린다면, 좀 너그러워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다.
진짜 휴식이란, 맹렬한 속도보다는 이렇듯 느리고 너그럽게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평창·정선·동해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