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명상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집중 명상법인 사마타(samatha)와 지혜명상법인 위파사나(vipasyana)다.
사마타는 일체의 생각을 멈추고 한 곳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을 말하는데 동양 특히 중국에서는 주로 멈춤(止)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의식을 오직 한 곳에 모아 삼매에 빠지는 명상법인 것이다. 이것은 곧 정신 집중이다.
그러나 사마타는 실제로 어떤 실체의 대상을 움직이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즉 몰입하며 읽는 책을 치우게 되면 주의가 흐트러지는 것과 같다.
위파사나는 사마타보다 한 단계 더 성숙한 명상법이다. 즉 생각을 움직여 지혜로서 명상에 드는 방법이다. 중국에 서는 이를 두고 관(觀)이라 한다.
이것은 내적인 명상을 통해서 얻어지는 대상을 집중적으로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즉 사마타와 위파사나의 차이는 그 명상의 주체가 외부에 있느냐 내부에 있느냐에 달려 있다.
명상의 주체가 외부에 있으면 사마타 명상법이고, 내부에 있으면 위파사나 명상법이라고 보면 된다.
그 중 위파사나 명상법의 주체는 들숨과 날숨을 뜻하는 안나반나(安那般那)이다.
이 호흡법은 마음을 오직 한 곳으로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는 것으로 수식관(數息觀)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명상을 하게 되면 몸은 편안해지고 몸을 타고 흐르는 삼독, 즉 욕망과 어리석음, 성냄이 사라져 마음속의 평화를 얻게 된다.
이것은 궁극적인 깨달음으로 향하는 수행법이다.
눈을 감고 고요한 생각에 잠기면 몸속을 흐르는 나쁜 기운, 몸속을 돌아다니는 욕망, 마음속에 든 어리석음을 지우게 된다.
지혜의 생각들이 몸속을 타고 흐르게 하는 방법이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명상법은 우리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수양을 위해 꼭 필요하다.
부처님도 제자들에게 이 명상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있을 때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호흡을 관하는 수식관을 닦고 행하라. 만약 수행하는 제자들이 수식관을 닦고 행하게 되면
몸과 마음이 편하게 되고 몸속을 떠도는 거친 생각과 나쁜 생각들이 순일해지며 그 순간부터 진실하고 확고부동한 생각을 닦아 스스로 만족하게 된다.”
위파사나의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먼저 몸을 이루는 모든 감각기관들을 잘 다스려 나무 아래나 아주 고요한 방에 홀로 눈을 감고 단정히 앉는다. 그 순간 모든 탐욕, 성냄 등 모든 의심이 되는 생각조차 끊어 버린다.
그리고 오직 숨쉬기에만 주의를 집중한다. 들숨 때는 숨이 들어오고 있음만을 생각하고 숨을 내뱉을 때는 오직 숨이 나가고 있는 것만을 생각하고 관찰한다.
몸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면 움직이는 몸의 상태와 그 움직임을 잠시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때에도 들숨과 날숨처럼 몸의 상태를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내 몸이 기분 좋거나 나쁘거나 집중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덧없음과 끊음, 무욕의 경계에 이를지라도 들숨과 날숨을 관하여 집중해야 한다.
부처님도 역시 훌륭한 명상 수행자임을 알 수 있다. 명상은 몸속의 나쁜 기운을 없애거나 나쁜 감정들을 없애는데 반드시 필요한 수행법이다.
명상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 우리의 마음에 든 온갖 대상에 대한 집착을 끊어내어 고요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즉, 말하지 말고 내 몸을 침묵 속에 가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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