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타, 위파사나
미얀마불교 남방불교에서 수행의 두 축은 사마타(Samatha)와 위빠사나(Vipassana)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관(止觀) 수행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 지(止)인 사마타는 하나에 멈춰서 몰입하는 것이고,
관(觀)인 위빠사나는 몰입을 풀고 멀리 떨어져서 내게 있는 신(身), 수(受), 심(心), 법(法)을 깊이 바라보는 것이다.
성인 싯다르타는 사마타 수행을 위주로 하다가 수자타 처녀의 타락죽을 얻어 마시고나서 고행을 그만두고, 위빠사나 수행으로 전환하여 보리수 밑에서 대각성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래서 미얀마에서도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하다.
예를 들어 한쪽은 사마타 수행을 거치고 나서 위빠사나 수행을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다른 한쪽은 사마타 수행은 크게 의미 없고 위빠사나 수행을 위주로 가면 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사마타 수행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다. 한쪽에서는 싯다르타가 사마타 수행을 거쳤기 때문에 위빠사나 수행을 이룰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싯다르타가 사마타의 오류를 깨닫고 위빠사나로 전환한 것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마타를 거치고 나서 위빠사나로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마타가 채우는 것이고 위빠사나가 비우는 것이라면, 채움이 있고 나서야 비움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고 말한 것은 색(色)에서 공(空)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밥 생각이 나지 않는 때는 밥을 다 먹었을 때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싯다르타도 세상에서 속세적인 것을 얻고 나서야 출가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몰입은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를 원효대사는 일심(一心)으로 표현했다.
요즘 시대에도 몰입은 수행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의 성공 측면에서도 많이 이야기한다.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법이다. 송곳도 끝이 한 점으로 뾰족하기에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