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한민족 서양보다 3,700년 앞서 "지동설"입증

천화대 2016. 2. 5. 23:12

대조선/SBS/역사

한민족, 서양보다 3700년 앞서 ‘지동설’ 입증했다.

| 2014.04.09. 13:3

한민족, 서양보다 3700년 앞서 ‘지동설’ 입증했다

이을형의 ‘법과 정의’…한국의 상고사 찾기(21)-신시배달국사(神市倍達國史)(13)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4-03-29 18:29:25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의외로 자기나라 역사를 안다고 하면서도 우리 역사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중국과 일본의 잘못 조작된 날조의 역사는 말하면서 진작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선조들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 의해 철저히 파괴 된 정체성(停滯性) 속에서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나아가 우리가 얼마나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민족인 것을 모르고 사는 국민이 너무 많다.

 

이러한 한민족의 역사무지에 대해서 이를 보는 외국학자들이

한국 역사의 진수를 알려주는 역사의 진실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1만년의 찬란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이면서도 아직도 우리 국민은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 안타깝다.

국경일이 되면 이야기 하는 사람들과 신문의 칼럼리스트 등에서도 드러나는

소위 역사를 안다는 전문가들의 무지함 또한 여전하다.

 

우리는 1만년이 넘는 위대한 역사를 가진 세계으뜸의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지도급인사까지

창피한 역사 무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가 최초·최고의 인류문명을 일으킨 민족 아닌가!

고대 요하문명, 피라미드, 신석기 유물, 쌀농사, 토기, 배 만들기(造船), 고래잡이, 고인돌,

천문세계도, 빗살무늬토기, 자연화약과 화포, 금속활자, 신기전(로켓), 철갑선, 책력,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등에서 보듯이

 우리는 5천년역사가 아니라 1만년이 넘는 역사란 것을 왜 모르는가.


필자의 명치대 선배이신 한갑수(韓甲洙) 선생은 군복무로 미국 공군 지휘 참모 대학에 입교했었다.

그 때 같은 입학생인 대만의 학자 서량지 교수가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귀국 한민족은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으로서

문자를 창제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로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음으로 본인이 학자적 양심으로 중국인으로서

사죄하는 뜻으로 절을 하렵니다. 받아주십시오”

 그는 이 말을 하고 한갑수 선생에게 넙죽 절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 1943년10월 초판)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4천 년 전 한족(漢族)이 중국 땅에 들어오기 전에 중원의 북부 및 남부를 이미 묘족이 점령해 경영하고

있었다. 한족이 중국에 들어 온 뒤에 점점 서로 더불어 접촉했다.

동이는 은(殷), 주(周) 이전은 물론 은나라 주나라 대에도 활동무대가

오늘날의 중국 산동, 하북, 발해연안, 하남 강소, 안휘, 호북지방, 요동반도, 조선반도 등

광대한 지역을 모두 포괄했다. 그 중에서도 ‘산동반도’가 그 중심지였다”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가 바로 중국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5천년 역사 운운하고 있으니 그 역사무지가 하늘에 닿아있다.

이로 인해 우리 한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갖지 못하고 있는 인사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지난 100여년 일본의 침략역사에 의한 괴기(怪奇)한 일들로 정신이 마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너무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나 역사를 모른 채 잊고 사는 자가 많음에 놀란다.

국가는 없고 자신만이 잘살면 그만이다고 하는 망국적인 행태가 매일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는데,

왜 이렇게까지 망가졌는지 실로 안타깝다.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 실체를 ‘천문학’에서 찾아 찾아보고자 한다.

천문학의 시조도 우리한민족이다

지금까지 잘못 알려진 천문학에 대해 세계천문학회는 조선시대까지 2천년 이상 꾸준히

하늘의 천문관측이 이루어져 기록이 남아있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중국뿐이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고대부터 하늘의 자손인 천민(天民=천손)으로서

하늘에 제사하면서도 동시에 천체에 대한 연구가 깊었다.

그것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 마련한 고인돌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고인돌에 북두칠성과 많은 별을 새겨 놓은 것은 태고 때 환인시대부터

천문에 관심을 갖고 연구한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천문학도 우리 민족에 의해서 시작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전 서울 대 박창범교수는 그의 저서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에서

"서구의 천문관측역사가 기껏해야 300년인데 비해 우리 동이족 배달민족은 BC 5000년 전부터 시작했다.

북두칠성을 비롯해 카시오페아 등을 새긴 고인돌이 북한지역에서만도 약 200여개가 남아 있다’

(1997.9.29 한국일보)고 발표했다.

 

그는 우리 천문학의 연구가 가장 오래됐음을 알리고 있다.

또한 대동강유역의 고인돌에서 별자리를 그린 ‘천문도’가 발견되고 

평안남도 증산군 용덕리 10호 고인돌 덮개돌 겉면에는 11개 별자리 80여개의 별을 나타내고 있다.

 

별의 밝기에 따라 구멍의 크기도 각각 달리했고 중심부에는 북극성이 그려져 있다.

이 고인돌의 별자리를 측정해보니 무려 BC 2800~220년으로 지금부터 약 5000년 가까이에 이른다.

지금까지 세계천문학계에서 고대천문학의 원형(별자리의 원형)이라고 한

메소포타미아(바빌로니아)지역  토지경계비의 천문기록 1200보다 1800년이나 앞선다.

천문학의 시작도 우리 한민족에 의한 것임이 입증된다고 하겠다.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세계 첫 천문도 중국과 일본은 이를 숨겼다.

이것도 중국의 경우는 한무제(漢武帝)시대 중국인이 서방의 세계와 접촉한 것이

태초원년(太初元年)에 행해진 역법개정(曆法改正) 운운하며,

이 무제의 역법(曆法)이 중국역법(曆法)의  기본이 됐다고 변조했다.

 

또한 일본 명치유신 이전의 역(歷) 즉, 구태음력(舊太陰曆)의 기본이 됐다고

요시가와 고지로(吉川幸次郞-경도대 교수)도 이와나미신서(岩波新書P214~5)에 버젓이 쓰고 있다.

참으로 못 말리는 행태다.

 

중국의 양심적역사학자인 서량지(徐亮之)는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책력을 만든 이는 희화자(羲和子)이다. 중국의 책력 법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됐다.

그는 은나라 출신으로 동이의 조상이다.

동이가 책력을 만든 사실은 진실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천문학계에서도 가장 오래된 별자리 지도로 인정하고 있는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가 우리에게 있는 것은

우리가 천문학의 선구자로 결코 우연이 아님을 방증하고 있는 셈이다.


고구려의 석각천문도(石刻天文圖)를 기본으로 12개의 분야로 하늘을 나누고

그 안에 크기와 밝기에 따라 1460여개의 별을 새겨놓고 293개의 별자리를 그린 웅장한 천문도는

단지 하늘의 별자리를 옮겨놓은 것이 아니라

 

황도(黃道=해가 1년 동안 지나가는 길)의 경사가 24°(도)라는 사실과 춘분점과 추분점의 위치,

계절의 변화 등을 기록하고 있어 당시 고구려인의 천문학 수준이 최고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우리 화폐 만원권 지폐 뒷면에 있는 별자리 그림 일부가 바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다.

중국의 1247년 ‘순우천문도’보다 900년이 앞서고 서양 천문학사보다 1000년 이상 앞선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도다.


조선조에 와서 태조4년(1395)에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의 중앙부와 달리

고구려 시대의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바깥에 새겨진 별들을 보면 고구려 초기하늘의 별들로 작성됐고,

이 같은 고구려 천문도를 기본으로 태조 때의 천문도는 수정된 하늘의 별자리였음이

고등과학원(KIAS) 박창범 교수에 의해 밝혀졌다.


BC 2099년 고조선 5대 단군, 인류 최초 지동설 이론

고조선 5대 단군인 구을(丘乙) 황제(BC2099) 때

황보덕이란 재상이 50여 년간 천체를 관측하고 구을(丘乙)단군에게 보고한 기록이 ‘환단고기’에 나온다.

북극성과 태양주위를 돌고 있는 행성으로 수성, 금성, 지구성, 화성 등 10개의 행성이름은 물론

인류최초의 ‘지동설’을 밝히고 있다.

 

이는 서양보다 3700년이나 앞선 것이다.

서양은 16세기에 와서야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1473~1543)가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가 태양주위를 돌고 있다.

지구는 태양주위를 도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발표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지동설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잘못된 우주관이기 때문이다.

서양은 조선 선조(1552)이전 까지도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인간은 그 중심에서 군림하는 존엄한 존재이며

달과 해위의 천상계는 영원한 신의 영역“이라는 잘못된 우주관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사물의 원리를 발견하는데 귀납법으로 도출시키는 그리스의 철학자이며 4대 성인의 한 사람인

소크라테스(BC,469~399)도  해와 달은 행성이 아닌 그들의 신으로 절대 숭배대상으로 여겼을 정도였다.

서양의 천문지식은 이처럼 우리에 미치지 못했다.

 

’단군세기‘에는 10대 단군인 노을(魯乙)황제 35년(을축년, BC1916)에

지금의 천문대인 감성대(監星臺)를 두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의 첨성대(瞻星臺)도 이 감성대에 근원을 두고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지금 첨성대 별 관측소가 남아있어 이것이 세계최초라는 것은 우리의 자랑이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조선시대 일식 정확히 예측, 1년 시간도 현재와 1초 오차

또한 ‘단군세기’에는 고조선 제13세 흘달(屹達)단군(BC1782~1720)때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집결을 말하는 오성취루현상(무진50년)기록이 정확히 나와 있다.

BC 1733년 7월 13일 그것이 사실이었음이 천문학자(박창범 교수)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에

의해서 밝혀졌다.

 

또한 박석재 천문위원, 이종호 과학저술가 등 많은 학자들의 연구로

고대시대부터 우리 조상의 천문학 발달이 어느 정도였나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삼국시대에 와서 극히 한정된 장소에서만 관측할 수 있다던 백제의 기록도 있다.

세계천문학계를 선도하는 박창범 교수는 잃어버린 우리 고대사를 되살리고 있는

환단고기(桓檀古記)의 일식기록을 현대 천문과학으로도 틀림이 없는 옳은 기록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의 저서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에서 백제의 일식 관측기록이 당시 백제영역인

현재 중국발해만 유역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곳은 우리 백제의 중심지였다.

조선조에서는 세종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돼 6시55분 53초에 끝났다고

정확히 예측한 것이 맞았다.

1년을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음으로서 지금의 48분 46초에 비해 1초의 오차밖에 없다.

이를 오영수선생은 ‘이순지’에 밝혔다.

 

반면 우리보다 천문지식이 뒤진 중국의 ‘현현기경’ 같은 중국의 고전에는 1년이 360일로 나타나 있다.

이러한 까닭에 일본학자의 ‘세계천문학사’에는 당시 인류 역사상 가장 과학적이고 정확한 책력으로

세종 때 이순지(李純之)의 칠정력(七政曆)을 꼽고 책력서로는 ‘칠정산외편’을 들고 있다.


놀라운 관찰력과 과학성, 실생활에 적용

하늘의 자손임을 자처하는 지혜로운 우리 배달민족은 천문을 관찰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가늠했다.

예컨대, 태양에 검은 흑점이 많아질수록 농작이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을

서양의 갈릴레오보다 1000여년이나 앞서 정확히 예측했다.

 

또 옛 중국의 오로라(Aurora=極光) 기록은 292개인데 비해

우리는 국제적으로 알려진 것만 해도 711개에 이른다.

중국의 ‘한서’(漢書)와 ‘후한서’의 중국 한족의 일식기록의 실현율은 78%에 불과하지만

‘삼국사기’ 초기 일식기록의 실현율은 무려 89%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중국은 일식기록도 우리의 천문기록을 베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들의 천문도 역시 우리의 천문도의 원형을 모사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당나라는 고구려의 독자적인 천하관(天下觀)=고구려가 지구의 중심으로 보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우리의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의 석각원본을 수장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덕일 박사)마저 나올 정도다.

 

7세기말~8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아지는 일본의 ‘기토라 고분에 그려진 별자리 벽화’가

일본 하늘의 별자리가 아닌 BC 3세기~AD 3세기의 고구려 하늘의 별자리인 점으로 미루어 볼 때도

우리 선조들은 고구려 이전에 이미 높은 수준의 천문학을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이 우리 한민족은 하늘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수차례의 수정을 거친 서양의 양력(BC46년 율리우스력, 歷)에 비해 훨씬 먼저인

2311년이나 앞서 BC2357년에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 백분의1의 오차도 없어 수정을 한 일이 없다.

 

이것은 우리가 만든 책력인 음력의 놀라운 과학성(정확성)과 실생활 적용성에 대해 경탄을 했던

세계적인 석학 자코모박사의 이야기다.

1994년 ‘한배달’에서 발간한 ‘천부경연구’의 편집후기에 이런 내용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 최초의 천문학 유물과 최고의 책력이 나온 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우연히 이루워진

것이 아닌 환인(桓因)의 상고시대, 환웅(桓雄) 고대시대, 단군(檀君)시대의 고조선을 잇는 ‘천민(天民)의

민족인 천손(天孫)으로서 태고 때부터 하늘에 감사하고 제사하며 천문을 연구해온 것이 바탕이 됐다.

 

그 천문지식이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에 이어져 내려온 것이었다.

중국의 명나라는 이러한 연구도 간섭했지만 세종대왕은 더욱더 천체연구에 매달려

농민의 농사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었다.

이 같이 우리가 천체연구의 선구자인 것을 세계가 다 인정하고 세계학자가 모두 경탄을 하는데

우리나라의 학자라고 자처하는 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민족에 대한 죄악이다.

 

우리는 세계를 지배한 민족이다.

우리민족의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두뇌의 명석함은 물론이고 세계를 주도하는 능력이

어느 민족보다 뛰어남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민족의 우수성과 창의력, 과학적 사고가 인류발전에 기여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제주도교육위원회 ‘耽羅文獻集’, 최진열 ‘대륙에 서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한창건 ‘환국, 배달, 조선사신론’, 한창호 ‘한국고대사 발굴’, 한정호 ‘대조선 민족사’,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稻垣泰彦·川村善二郞·村井益男·甘粕 健 共著 ‘日本史’ 외 다수서책을 참고·인용했음을 밝힙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greatchosunsa